혁명

Nov 13 2023

‘혁명.’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뇌리를 관통하는 외마디 탄성이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고통과 절망이 극한에 이르렀을 때 응축된 어둠의 에너지가 도리어 빛으로 터져나오며 불의를 전복시키는 힘이 아니던가. 손파, 그의 작품에는 바로 그런 힘이 있다.


차가운 회색빛, 날카로운 침. 삼라하게 모이면 시커먼 어둠의 색이 된다. 음(陰)의 재료, 음(陰)의 색상. 이런 재료와 색상이 모이면 본래 어두워야 마땅하다. 칠흑 같이 어둡고 서늘하고 암울한 기운이 사람을 짓눌러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그와는 정반대이다. 그의 작품에 응축된 어둠의 에너지는 극한에 이르러 도리어 빛이 되어 터져 나온다. 암흑이 손파의 손을 거치면 완전히 전복되어 광명(光明)으로 솟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광명은 작품을 보는 이를 온건하게 품어내고 밝게 비추어 내어 새로운 눈을 뜨이게 한다. 대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지, 손파의 작품은 불가사의(不可思議) 하다. 오직 손파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만일 다른 이가 같은 재료, 같은 기법, 같은 형태로 똑같이 본을 떠 만든다면 그가 완성한 작품은 분명 음(陰)의 기운으로만 가득찰 것이다. 음(陰)을 응축시키면 음(陰)이 발산되는 것이 보편이다. 그러나 손파의 작품은 음(陰)을 담아낼수록 도리어 광명(光明)으로 솟아난다.


변화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다. 음이 양으로, 어둠이 빛으로 변화한다고 해서 모두 같은 유형의 변화는 아닌 것이다. 극치에 이르러 음이 양으로 ‘승화’되고 어둠이 빛으로 ‘승화’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승화(昇華)는 수동적인 현상이다. ‘나’가 주체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는’ 것이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지점에 이르러 자연히 발현되는 현상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전복은 그와는 완전히 다르다. 전복(顚覆)은 능동적인 힘이다. ‘나’가 주체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다. 그래서 어둠을 빛으로 전복하고 음을 양으로 전복하는 손파의 작품이 ‘혁명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주체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내고 새로운 길을 펼쳐내는 혁명적인 힘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손파 작가 그 존재의 힘이다. 한 땀 한 땀 실낱 같은 날카로움으로 고통과 절망을 에고들고 또 에고들며 무념(無念)에 이르른 그의 존재, 한계도 없고 끝도 없는 시간을 파고들고 또 파고들며 무아(無我)에 이르른 그의 존재가 이 세상 모든 구분, 음양의 구분마저 초월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음의 기운도 제 손으로 쥐락펴락 제 뜻에 따라 얼마든지 전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 만능한 힘으로 모든 빛을 흡수하는 시커먼 어둠으로도 백색빛 광명을 발산하는 그의 작품은 진정 ‘불가사의한 혁명’이다.


그 존재는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호소한다. 어둠도 고통도 절망도 절대 외면하지 말라고. 절대 피하지 말라고. 도리어 정면으로 직시하라고. 그리고 그 어둠, 고통, 절망의 한 가운데로 돌진하라고. 그 한 가운데서 우리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으니. 그 한 가운데서 우리는 어둠 뚫고 빛으로 솟아나는 무한한 힘을 얻게 될테니. 어둠이 두렵다고 외면하고 피해버리면 언제까지나 달아나는 삶, 쫓기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정면으로 마주한다면 우리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 얼마든지 빛으로 바꿀 수도 있다고. 어둠과 빛, 고통과 환희, 절망과 축복은 둘이 아니라 하나, 서로의 양극으로 이어지는 유기적 현상에 지나지 않으므로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피할 필요 없다고. 그 양극 모두 가뿐히 초월할 수 있다고. 그러니 거침없이 살으라고. 살면서 어떤 일이 닥쳐오든 굴하지 말고 전진하라고. 오직 힘차게 살아가라고. 그 존재가 그의 작품을 통해 호소한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앞길을 밝게 비추어 내는 광명에 눈이 바로 뜨이고 

메아리 쳐오는 그의 목소리에 걸음이 힘차게 옮겨진다.


그처럼 두려워 말고 어디로든 끝까지 가보자고. 끝까지 가야만 알 수 있다고. 

어둠도 끝까지 가보자고. 완전한 암흑으로 들어가봐야 알 수 있을 거라고.

바로 그 끝에서만 태어나는 광명의 힘을.


어둠의 끝에서 태어난 광명만이 전체를 비추는 힘이 있고 영원을 비추는 힘이 있다. 

애매하게 어두우면 알 수 없다. 빛에 나를 반 쯤 걸쳐두고는 절대로 알 수 없다. 

오롯이 홀로, 어둠의 끝까지 가봐야만 한다.


태어났다면 그 광명, 내 안에 솟아봐야 하지 않겠나. 내 안에 가져봐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손파, 그처럼 어디로든 그 끝까지 가봐야 한다. 그곳은 끝이 아니라 시작.

그 끝에서 단 하나의 내가 태어날테니, 단 하나의 삶이 시작될테니..